중국 역법의 간략한 역사

중국 역법은 역사적으로 이어진 여러 태음태양력 체계의 계열입니다. 음력의 달은 달의 주기를 따르고, 계절의 구성은 태양을 따릅니다. 두 주기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필요는 계속되었지만, 그에 쓰인 계산법과 기관, 출판물은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초기 역법 체계

상나라 후기의 갑골문에서는 이미 번호가 붙은 달과 천간·지지의 주기인 간지의 날짜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 60개 순서는 달 안에서의 위치와 관계없이 연속한 날들을 식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후대 전승에서는 황제(黃帝) 같은 문화 영웅이 달력을 세웠다고 했지만, 이런 기원 이야기가 달력의 발명 시점을 역사적으로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바탕에 있는 천문학적 문제는 간단합니다. 평균적인 음력 열두 달은 약 354일인 반면, 계절을 기준으로 한 해는 약 365¼일입니다. 조정하지 않으면 달들이 계절 속에서 점차 이동합니다. 윤달은 태음태양력을 계절의 해에 맞추어 줍니다. 언제 윤달을 넣고 각 달의 시작을 어떻게 계산할지 정하려면 관측뿐 아니라 규칙도 필요했습니다.

한 해의 시작은 또 다른 선택이었습니다. 진나라와 한나라 초기의 정부는 번호상 10월에 해를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04년의 태초 개력은 해의 경계를 봄의 시작과 관련된 1월로 옮겼습니다. 날짜 계산에 쓰는 천문학적 틀도 개정했습니다.

한나라 때에는 상세한 역법 절차가 정사에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유흠의 삼통력은 태초력 전통을 발전시켰으며, 후한은 서기 85년에 사분력을 채택했습니다. 한나라 문헌에는 24절기 이름이 모두 나오지만, 초기의 배치는 현대의 순서와 같지 않았습니다.

관측, 기관과 인쇄 달력

달력은 공무와 국가 의례를 조직했으므로 황실은 역법 편찬을 지원했습니다. 달력을 반포하는 일은 통치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천문 관서는 관측과 계산을 결합하고, 기록을 관리하고, 백성이 사용할 달력을 준비했습니다.

720년대에 승려 일행의 사업은 새로운 기구, 해그림자 관측 조사, 개정된 수학적 절차를 한데 모았습니다. 해그림자를 재는 표는 수직으로 세운 표지로, 그 그림자를 통해 달라지는 태양의 높이를 측정합니다. 이 사업은 현종이 추진한 더 큰 국가 의례 사업의 일부였습니다. 그 결과인 대연력은 일행이 죽은 뒤인 729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달력은 조정 밖에서도 유통되었습니다. 둔황에 남은 9–10세기 자료는 날짜와 함께 여행·혼인·건축 등에 관한 권장 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지역 편찬자와 상업 인쇄업자는 천문 계산을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는 연간 출판물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손으로 베낀 것도 있고 목판으로 인쇄한 것도 있었습니다.

1281년에 시행된 원나라의 수시력은 관측과 수학적 방법을 한층 개선했습니다. 곽수경, 왕순, 허형 등이 주요 참여자였습니다. 그 틀의 상당 부분은 명나라 대통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새 왕조가 달력의 공식 정체성을 바꾸면서도 상당한 기술적 성과를 물려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1645년 개력과 절기

시헌력은 청나라 초기인 1645년에 공식 역법이 되었습니다. 중국 학자와 예수회 천문학자들이 명나라 때 시작한 작업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태음태양력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청대 내내 계산법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절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전 체계는 대체로 계절의 한 해를 시간상 동일한 24개 구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시헌력은 계산된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절기를 배정했습니다. 현대의 표현으로는 태양이 하늘을 배경으로 해마다 지나가는 경로인 황도에서, 태양의 겉보기 황경이 15도씩 달라질 때 다음 절기가 듭니다. 태양의 겉보기 운동은 일정하지 않으므로, 같은 각도 간격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서로 다릅니다.

한 절기씩 건너서 놓인 열두 절기는 달의 번호와 윤달 규칙에 사용하는 중기입니다. 따라서 그 계산법을 바꾸면 어느 음력 달에 특정 번호를 붙일지, 어느 달을 윤달로 삼을지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 개력은 천문 예측의 정밀도뿐 아니라 날짜의 구성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역법사의 주요 시점

시기 또는 연도변화
상나라 후기갑골문에서 주기적인 날짜 이름과 번호가 붙은 달을 사용함.
기원전 104년태초 개력으로 역법을 개정하고 1월을 해의 시작으로 삼음.
서기 85년후한 사분력이 공식 사용되기 시작함.
729년당나라에서 일행의 대연력이 공식 사용되기 시작함.
9–10세기둔황 달력에 필사와 인쇄 형태의 연간 달력 자료가 남음.
1281년원나라 수시력이 시행됨.
1645년청나라가 시헌력과 위치에 따른 절기를 채택함.
1912년중화민국이 그레고리력의 상용 날짜와 민국 기년을 채택함.

상용 날짜와 이어지는 음력 관행

1912년에 그레고리력을 상용 날짜에 채택하면서 공식 날짜에 쓰는 달력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의 개력과 달리, 이 용도에서는 태음태양력의 틀 자체를 대체했습니다. 일상생활의 전환은 점진적이었고, 전통 역법은 계속해서 춘절과 다른 명절, 가족 의례의 시기를 정했습니다.

두 역법을 함께 표시한 달력은 이렇게 이어지는 용도의 구분을 반영합니다. 그레고리력 날짜는 한 날을 상용력의 해 안에 놓고, 짝지어진 음력 날짜는 전통적인 달과 명절 주기 안에 놓습니다. 절기는 계절의 표지로서 자리를 유지합니다.

서기 1–2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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