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력과 그 근거 자료

수시력(授時曆), 곧 ‘때를 내려 주는 역법’은 원나라가 음력의 달, 계절의 기준점, 천문 현상을 계산하는 데 사용한 체계입니다. 1281년에 도입되어 새롭게 수행한 천체 관측과 개정된 천문 계산 절차를 결합했습니다. 그 체계의 상당 부분은 이후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으로 이어졌습니다. 문헌에 남은 계산 방법과 가오청에 현존하는 그림자 측정 시설은 관측과 계산이 어떻게 함께 이루어졌는지 보여 줍니다.

원나라의 역법 개혁

1276년 원나라 조정은 허형, 왕순, 곽수경에게 새 역법의 편찬을 맡겼습니다. 이들은 중국 북부와 남부의 전문가들과 함께 이전 방법을 새로 관측한 태양, 달, 별의 자료와 비교했습니다. 역법은 1280년 동지에 완성되어 1281년부터 사용하도록 반포되었습니다.

이 개혁은 오랫동안 이어진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음력의 달과 계절년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지만, 역법은 두 주기를 연결해야 했습니다. 삭과 일식·월식 같은 개별 현상도 예측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관측은 출발값을 제공했고, 수학적 절차는 그 값을 앞으로 전개하여 이듬해의 날짜를 산출했습니다.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여러 천문 주기가 일치한다고 가정한 아득한 옛날의 이상적 출발점인 ‘상원(上元)’을 포기한 것입니다. 수시력은 대신 1280년 동지를 역원, 곧 계산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과 앞선 평균 삭 등 관련 현상 사이의 시간 간격을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가상의 먼 옛날에서부터 막대한 일수를 셀 필요가 없어졌으며, 서로 다른 주기들을 최근 관측에 연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과 계절 계산하기

평균 삭망월은 삭과 삭 사이의 평균 간격을 제공했습니다. 태양과 달의 겉보기 속도는 일정하지 않으므로, 개별 삭은 그 평균 간격으로 나열한 시점보다 앞서거나 늦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수시력은 이러한 운동 변화에 보정을 적용했습니다. 보정한 삭이 음력 달의 시작을 정했으므로, 계산을 바꾸면 달의 첫날이 다른 날짜로 옮겨질 수 있었습니다.

이 개혁은 알려진 값들로부터 그 사이의 값을 계산하는 보간법을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이에 따라 계산자는 표에서 가장 가까운 값을 그대로 쓰는 대신, 천체 운동의 특정 단계에 맞는 보정값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체계는 계절의 기준점이 별에 대해 서서히 이동하는 세차도 반영했습니다.

절기는 계속 평기법, 즉 평균 절기를 정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채택한 계절년을 동지에서 시작하여 같은 길이의 24개 시간 구간으로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태양의 고르지 않은 운동에 대한 보정과 같은 시간 간격의 절기가 함께 존재했습니다. 수시력은 아직 태양의 연간 경로에서 계산한 위치를 같은 각도 간격으로 나누어 절기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가오청에서 계절 측정하기

허난성 덩펑 인근의 가오청에서는 수평 막대가 정오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북쪽으로 길게 뻗은 눈금 위에서 측정했습니다. 측정면으로부터 막대까지의 높이는 40척, 약 9.75미터로, 표준적인 8척 표의 다섯 배였습니다. 표는 그림자를 통해 태양의 고도 변화를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막대를 높이면 그림자 위치의 변화가 커지고, 물을 채운 수로는 눈금의 수평을 맞추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기구가 커지자 그림자가 희미하고 흐릿해지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곽수경의 기구는 작은 구멍을 이용해 막대의 그림자가 가로지르는 태양의 상을 투영함으로써 그 위치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관측자들은 하지나 동지 전후 여러 날의 측정값을 비교했습니다. 하지나 동지 무렵에는 정오의 그림자가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가장 길거나 짧아 보이는 그림자만으로 정확한 전환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더 넓은 기간에 걸쳐 반복해서 비교하면 하지나 동지의 시각을 더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계절상의 출발점을 정하는 일은 그해 절기를 계산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일 년의 길이와 예측의 한계

수시력은 계절년을 365.2425일, 평균 삭망월을 29.530593일로 정했습니다. 이 수치들은 천문 주기를 나타냅니다. 일 년의 수치가 모든 음력 해의 길이를 뜻한 것은 아니며, 한 달의 수치가 달력에 하루의 일부를 넣도록 정한 것도 아닙니다. 개별 음력 달은 29일 또는 30일이었고, 윤달을 두어 달의 순서를 계절에 맞추었습니다.

일 년의 계산값은 계절 주기를, 삭망월의 계산값은 삭이 돌아오는 평균 주기를 다루었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얻으려면 역원과 고르지 않은 운동에 대한 보정도 필요했습니다. 일 년의 길이를 실제에 가깝게 추정했더라도 계산의 다른 부분에서 생긴 오차까지 보완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달의 경로는 태양의 겉보기 경로에 대해 기울어져 있으므로, 대부분의 삭에는 달이 태양의 북쪽이나 남쪽을 지나며 태양을 가리지 않습니다. 일식이 일어나려면 두 경로의 교차점 부근에서 삭이 일어나야 합니다. 특정 장소에서 보이는 모습과 시각을 예측하는 데에는 관측자의 위치도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역법의 정확성을 잘 알려진 일 년의 길이 하나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명나라로 이어진 체계

명나라의 대통력은 일부 출발값과 규칙을 고치면서 수시력의 수치 및 계산 체계 상당 부분을 유지했습니다. 차이 중 하나는 계절년의 길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수시력에는 역원에서 미래로 계산할 때 채택한 일 년의 길이를 줄이고, 과거로 계산할 때에는 늘리는 장기 보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통력은 이 보정을 생략했습니다. 그럼에도 원나라의 개혁은 달, 계절, 천문 현상을 계산하는 절차를 통해 새 왕조의 공식 역법 제작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기 1–2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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